[소아과 사태] 소아과가 망해간다. 소아청소년과 회장은 폐과 이야기까지
안녕하세요! 닥터스피드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최근 뉴스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이야기 다들 한번쯤은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급감' 이라는 기사와 '가천대길병원 소아과 입원진료 중단' 기사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우선 상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급감
- 2019년 80%
- 2020년 74%
- 2021년 38%
- 2022년 27.5%
- 2023년 15.9%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201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 그 이후부터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실겁니다.
그 전부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수가 개선 및 여러가지 환경 개선을 요구 해 왔지만, 이루어 지지 않아 소아청소년과의 인기는 점차 떨어지는 추세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12월 16일 발생한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의료진이 구속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소아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급격하게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22년 12월 15일 대법원까지 간 소송은 '의료진 전원 무죄'로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암투병을 하면서도 신생아실 중환자실을 지키던 교수님이 구속 당하던 장면은 수많은 의사들, 그리고 의대생들의 뇌리에 정말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충격을 줬습니다.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잘못되면, 내 잘못 여부와 상관 없이 구속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은 정말 '사명감' 및 '환자를 위한 헌신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며 대학병원을 지키고 있던 많은 의사들에게 강한 경각심을 주는 것이었죠.
그 결과가 바로 아래와 같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입니다.
주요 병원 201명 정원에 33명 지원. 지원율 16.4%,전체 병원 지원율 15.9%.
전국의 수 많은 수련 병원 중에서 '단 11개의 병원' 을 제외하면 소아과 레지던트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맨파워가 부족한데, 윗년차가 없으니 아랫년차도 지원하기 힘들고.. 수가가 워낙 낮아 진료를 보면 볼수록 적자를 보기 때문에 전문의를 추가 고용할 수도 없어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소아청소년과학회에 시행한 전국 수련병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24시간 정상적인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가능한 수련병원이 36%(전체 병원이 아니라 레지던트가 있는 대형 병원 중 36%), 전국의 교수(전공의 지도전문의) 당직 시행 수련병원이 75%임에도 불구하고, 입원전담전문의 1인이상 운영은 27%에 불과하며, 2023년 전공의 지원이 악화돼 진료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한 수련병원은 75%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전공의(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는(1,2,3,4년차 아무도 없는)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도 서울 12.5%, 지방 20%에 육박한다고 하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낌이 오실거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소아과 진료 최근에 보신 분 있나요?? 얼마 내고 나오셨나요??
야간에 응급실에 가서 처치를 받고 나와도 10만원도 내지 않아도 되고, 동네 소아과에 가서 진료만 보고 나오면 500원만 내면 되는 이런 나라..
최근에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어느 소아과 전문의의 글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젊은 의사들은
어쩌다 소아과를 포기하게 되었나?
1. 출산율 낮아서 소아과 안 하는 거 아닙니다.
애 다섯에서 하나로 줄었다지만, 한 명에 한 번씩 다섯 번 올 거 한 명 데리고 열 번 와요.
점심을 평소보다 덜 먹고 트림을 두 번이나 해서 배에 이상 있을까봐 걱정된다고 데려 옵니다.
이마에 모기 물린 게 사흘 넘게 자국이 있다고 응급실로 와요. 진짜 옵니다.
절대 출생아 수는 적지만 미숙아 / 선천성 질환 / 만성 질환자들 급증해서
환자군의 크기와 필요한 진료양의 규모는 적지 않고요.
소아 인구 줄어서 비전 없다 소리는 제가 전공의 지원하던 15년 전부터 나왔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하겠다던 매니아층이 있었어요.
근데 왜 하필 이제야 문제가 될까요.
2. 어제 오늘 의사 때리는 보호자 이야기 많이 올라오던데
솔직히 실제로 폭행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
저도 ‘주먹으로’ 직접 맞아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폭언과 무례함은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겁니다.
얼굴에 손이 직접 와 닿지 않았다 뿐이지, 정말 뺨을 맞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말을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쩌다 만나는 게 아니라, 상상초월로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부모들이 팔짱을 낀 채 위아래를 훑고 매우 많은 분량의 언어에 ‘짜증’이 묻어 있습니다.
그럴거면 도대체 왜 데려오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부모들에게 소아과 의사의 포지션은 대충
가해자 / 사기꾼 / 돌팔이 / 저임금 노동자 사이의 그 어디 쯤에 있나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매너를 갖춘 보호자가 드뭅니다.
그리고 뭐 하나라도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대면 혹은 온라인 갑질이 시작되죠.
‘애가 먹을건데’ 포함 된 배민 리뷰나 폐업한 키즈카페 사장님들 사연 보신적 있으시죠?
그걸 ‘내 **가 아프다는데’로 바꾸고 레벨을 몇 단계 더 올리면 소아과에서의 일상이 탄생합니다.
‘부모 마음에 걱정돼서’ 한 마디만 붙이면 온갖 무례와 갑질과 폭언 폭행이 용인되는 나라라서요.
그러고보니 저도 ‘주먹으로’ 맞은 적만 없다 뿐이지 보호자가 던진 약봉지나 처방전에는 맞아 봤고,
멱살은 잡히기 1초 전까지 여러 번 가 봤고, 소리 지르고 협박 당하는 일은 잊을 만 하면 어김없이 한 번씩 겪고 있네요.
(니가 물렁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제 현실 캐릭터가 어떠냐면요...)
3. 우리는 싸구려 의사라서
근데 심지어 쌉니다.
싸도 너무 쌉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아니라 편의점 커피보다 쌉니다.
커피 중에 소아과 진료비보다 저렴한 건 아마 레쓰비 파란색 캔 하나 정도일거예요.
솔직히 수입은 두 번째 문제고 돈을 몇 백원 몇 천원 내고 나가면 보호자들이 그 진료 자체를 몇 백원짜리로 봅니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심지어 몇 백원짜리 정보를 손쉽게 제공하는 존재에게 부모들이 뭐 얼마나 대단한 존중을 보일 것 같습니까?
커피 한 잔에 6000원이면 들고 다니며 마시고 한 잔에 6만원짜리 커피라면 브랜드 굿즈까지 사겠지만 600원짜리 캔커피는 한두모금 마시다 버릴거잖아요.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이 싸구려이니 닥터쇼핑은 당연하고 약은 하찮으며 진료는 내가 평가할 재료일 뿐이죠.
이 곳은 강약약강의 나라이고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모성애 부성애라고 표현하기에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너무나 갑질에 다양하게 도가 텄어요.
소아과 의사가 되면 이런 자괴감을 매일 견뎌야 합니다.
다른 거 해도 되는데 굳이.. 소아과 하고 싶겠어요?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로 근근히 이어지던 소아과 지원율이 명백히 추락한 건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태 이후입니다.
그 때 법원과 행정기관, 그리고 누구보다 국민들이 너무 명백히 알려주었어요.
너희는 환자를 일부러 죽이려는 존재야.
그러니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해.
아기가 죽었다며. 그럼 죽인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누군가 감옥에 가야 할 거 아니야.
(고의적 위해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 행위의 결과에 형사 재판을 거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그 사건이 소아과 의사들에게 미친 여파는 어마어마합니다.
의대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치료 잘 하라는 게 아니라 ‘Do No Harm’ 인데
사람들은 우리를 살인자라고 불렀습니다.
동료들이, 선배가, 아무것도 모르는 전공의들까지 형사 소송에 휘말리더니 하루 아침에 감옥에 갑니다.
그냥 하던 일을 하고 있었고, 닥친 상황에서 매번 그래왔듯 살리려던 것 뿐인데,
살인자 소리를 들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실제로 감옥에 갑니다. 법정구속이 돼요.
의사의 모든 행위는 환자의 안녕을 위함이라는 너무 당연하고 단순한 명제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요.
나도 내 자식이 있고, 대부분 모든 상황에 내 자식이어도 똑같이 했을 일들인데, 나의 동료가 하루 아침에
자기 자식들을 못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들려옵니다.
한 두 건이 아니라, 계속 들려옵니다.
내 자식 살려내, 하고 멱살잡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속이 시원합니까?
10%의 가능성에도 살려 보겠다고 애쓰던 그 의사는 그런 경험을 몇 번 직접 간접 경험하고 나면 50%의 가능성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할거예요.
그러니까 소아는 더 안 합니다.
성인 환자의 죽음이나 손상에 비해 보호자들은 더욱 비이성적으로 반응하고 고소하고 여론도 판결도 의사의 선의나 불가항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데 내 자식 내 가족 내팽치고 감옥 갈 리스크까지 져 가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사명감이 없다고요?
제 부모 자식 배우자 돌보는 게 뒷전인 의사가
그럼 인간적이고 사명감에 넘치는 겁니까?
당신은 당신의 직업에 그만큼의 사명감이 있습니까?
의사니까 그래야 한다면
그럼 그 만큼의 존중이 이 사회에 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래서 못 하는겁니다.
돈 못 벌어?
됐어, 뭐 적당히 먹고 살면 됐지..
보호자들이 진상이야?
아유 뭐 하루이틀 일이야, 애들이 무슨 죄겠어..
근데 내 자식 두고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대.
응..? 그건 아니지.. 싶지 않겠어요?
5. 여기서 오해하시는게
- 수요공급 곡선이 해결 해 줄거다
- 여전히 소아 진료 볼 의사는 많다
- 아동병원 활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시는 분들 많던데
맞아요.
어차피 소아인구 주는데 소아과 전문의 충분히 많고 동네병원은 계속 잘 돌아 갈 거예요.
감기 진료는 십년 뒤에도 아무 문제 없어요. 소아과 없으면 이비인후과나 가정의학과 가도 돼요.
그런데, 미숙아를 낳았을 때 그 아이를 살릴 의사는 없을 거예요.
아이가 중증 질환으로 진행 될 때, 그 아이의 병에 전문성을 가진 세부전문의는 없을 거예요.
요로감염까지는 어떻게 보겠지만 투석해야 하는 아이는 포기하게 될 겁니다.
기침약 처방은 아무나 해도 인공호흡기, 에크모 달고 밤새 중환자실 지켜 줄 의사는 없다고요.
팔 부러진 아이는 어떻게 고쳐 보겠지만 대형 사고에서 중증 외상을 입은 소아는 볼 수 있는 의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이송하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 날이 와요.
그리고 그 시간은 수요공급 운운하는 그 느긋한 논의의 시간을 결코 기다려 줄 수 없을겁니다.
10년 안에 교육이 가능한 의사들이 절반 이상 은퇴하고 병원들은 유지 안 되는 병상을 줄이거나 없앨거거든요.
서울대 아산 삼성 가야겠네, 죄송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곳은 이미 365일 풀베드입니다.
저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나의 직업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소아과 하고 싶다 하면
응, 소아과 좋아, 어차피 평생 하다보면 인기와 성공의 그래프는 변하게 마련이니 지금 반짝 인기 따라가지 말고
나 자신이 평생 해도 괜찮겠다 싶은 과를 가, 그렇게 말 해 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못 합니다.
개인 소아과는 자괴감에 못 하고
대학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은 무서워서 못 할 걸
그래서 소아과 의사로 사는 게
더 이상은 행복하거나 보람있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요.
저는 제 직업 좋아해요. 아이들 좋아해요.
다시 태어나도 한 번 더 할 만한 보람있는 일이라고, 당장 전쟁이 나서 동전 한 잎 못 받는대도
내 앞에 아픈 아이가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뭐가 됐든 기꺼이 감사하며 할 만큼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어요.
그리고 저의 동료들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올 가을부터, 실시간으로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들을 보며 폭탄이 점점 너무 자주 돌아오는데 내 손에 너무 오래 있어, 나도 엄만데,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의 동료들도 그렇습니다.
명백한 고의가 없는 의료행위에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불가항력적 손상에 대한 배상을 의사가 떠안게 하지 말고
소아 진료 수가와 경환 보험 본인부담금 비율만 조율해도 애들 예쁘다며 현실감각 갖다 버리고 소아과 손 들 학생들 널리고 널렸습니다.
근데.. 그냥 이대로 둘 거예요 아마.
아는데 안 하는거거든요.
이 나라가. 부모들이. 국민들이.
이 글을 읽으며 수많은 의사들이 공감하고 수 많은 의사들이 안타까워하며 분노했습니다.
우리 모두 아는데, 싼게 좋아서, 나만 아니면 되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음 시를 읽어 보시며 다시 생각해보시길 권유합니다.
"(독일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모른척 하고 있는 이 사태가, 손 놓고 있는 이 현실이 지속되면 훗날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 해봅니다.
기분이 울적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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